수호수 22

태장동 미륵사 느티나무

시내에서 간혹, 산골짜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도량입니다. 절도 나무도 그 크기는 특출나지는 않으나, 상부상조한 덕분에 나름 자태가 있어 저 같은 손님의 발걸음을 낚아챕니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쉬라며 유혹하니 중생이 따라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역시 종교시설의 나무라 그런가, 비슷한 크기의 다른 나무 대비 범상치 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이어 셔터를 눌러 대니 수행하시는 분께서 문을 열고 어쩐 일로 왔는지를 여쭈십니다. 고목의 자태가 빼어나서 저도 모르게 들렀다 하니 웃으시면서 아주 오래된 나무임을 알려주십니다. 가지치기를 왜 이렇게 크게 하셨냐 물으니 관리하기 힘들어 그리 하셨다 합니다. 계속해서 크게 가지치기를 하면 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한 찰나,..

수호수 2023.09.14

태장동 영진2차아파트 느티나무

나무 옆 큰 길을 지나다 무언가 풍성히 솟아 있길래 발걸음을 돌려 보니 발견한 특이한 나무입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것으로 보아 아파트 옆 건물 대지에 있는 나무로 추정되지만, 인근에 특징지을 것이 아파트뿐이라 이리 이름지었습니다. 아파트 주변에 다수의 오래된 주택, 철도용지가 있고 큰길이 이상하게 굽이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마을이 있던 자리일 터인데.. 그 이름은 찾을 수가 없네요. 여하튼, 마을을 잃어버린 까닭에 붙여줄 이름마저 잃어버린 안타까운 나무입니다. 그런데 자라는 환경마저도 온갖 철골 구조물로 잠식되어 있어 보면 볼수록 수심을 더합니다. 나무도 이제는 못 버티겠다 싶은지 표피를 가리가리 갈라뜨려 놓은 게 울분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세만큼은 강 바로 옆인 덕분인지 왕성하여 나름 고..

수호수 2023.08.31

무장리 장포마을 시무나무 숲

호저면 무장리에는 간무곡, 고려대, 장포, 살미의 네 개의 마을이 있는데, 살미를 제하고는 모두 마을마다 자랑스러운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중 장포에는 이젠 그 자취를 감춰 찾기 힘든 마을숲이 시무나무를 위주로 복원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본래 있던 나무는 돌로 터돋움을 해서 위엄을 더하고, 다른 나무들은 이식한 모양입니다 종중에서 무상으로 전통 유지를 위해 사용하게 하는 땅이라니 참 값진 곳입니다. 마을숲 북쪽에 있는 소매점 주인께서는, 본디 이 땅을 비롯해 강변을 따라서 수 배에 달하는 규모로 시무나무가 있었으나, 섬강 둑을 세 차례에 걸쳐 높이면서 대부분의 나무들이 사라졌다며 소회를 푸셨습니다. 남아 있는 옛 것의 흔적도 없애는 마당에 사라진 옛 것의 모습을 복원해 준 경주이씨 영장공 종중에게 감사..

수호수 2023.06.29

매호리 상촌 느티나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아랫집을 감싸고 있는 작고 둥근 수관의 나무 하나, 전형적인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다만, 수관의 크기에 비해 줄기가 지나치게 두꺼워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황혼의 황홀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황홀경의 원천은 바로 몸통은 날아가고 뿌리는 절반이 썩어 문드러졌어도 장엄함을 뽐내는 그 자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몸통이 사라진 지 이미 수백년은 된 것인지 북쪽 끄트머리는 다 아물어 있었고, 남쪽은 절반 정도가 썩어서 탈락 중이었습니다. 로드뷰를 통해 과거 사진을 보니 10년 새 그 크기가 절반은 줄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온 그 세월은 내면 깊숙이 축적되어 있었을 터,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시간을 모두에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명문화된 글자도..

수호수 2023.06.22

무장리 간무곡 느티나무

예전엔 골짜기에 물이 많았는지 무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동네에 걸출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숲길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앞의 정자는 초소인가요? 거미줄로 어지러이 덮여 있어 사람이 없구나.. 하는 순간 숲길에서 트럭이 나옵니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인 겁니다. 굵기며 남쪽 줄기에 달린 커다란 혹하며 보호수 깜냥은 충분히 되는 나무입니다. 남서쪽으로 큰 줄기가 하나 부러져 있는데 이것마저 있었으면 그 자태는 가히 원주에서 10순위 안에는 들었을 겝니다.

수호수 2023.06.08

호저초등학교 플라타너스

이 글을 쓰면서 과거의 사진들과 비교해 보니,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두산백과의 과거사진이나 당장 4년 전에 제가 찍은 사진만 보더라도 아랫가지가 끊임없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수양버들처럼 길게 늘어뜨리는 가지를 보지 못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인간을 피해 하늘로 치솟고만 있습니다. 관리상에 어떤 불편함이 있어서 계속해서 가지를 자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버려둬도 괜찮지 않을지...? 나무를 옥죄는 벤치까지 설치했으니 하나쯤은 내버려 둬 주기를 빕니다.

수호수 2023.06.01

용암리 탑골 느티나무

젊은 나무여서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못 본 사이에 줄기의 반쪽이 날아갔습니다. 속이 썩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큰 상처를 입다니.. 이런 것만큼은 정말 불가항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깊게 패인 줄무늬가 매력적인 나무였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당제를 지내는 사람이 적어지니 그 신통력도 소멸되는 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 나 무 정 보 - 용암리 탑골 느티나무 ​ ​ 수종: 느티나무 ​ 수령: 300~400년 정도 되어 보입니다. ​ 나무둘레: 300~400cm 정도 되어 보입니다. ​ 수고: 11m 정도 되어 보입니다. ​ 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1027

수호수 2023.05.18

법천사지 느티나무

사람에게 있어서 젊을 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로 늙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법천사지 느티나무는 그 힘든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내었습니다. 한 줌의 어둠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갈라 지켜보는 이에게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손을 탄 건축물들은 시간이 흘러 모조리 조락하여 터만 남았지만, 나무는 그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킵니다. 융성하던 법천사의 과거를 홀로 재현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지난 몇 년간 약해지던 수세를 극복하고 영롱하고 푸르게 빛납니다. 누군가는 이에 혹하여 치성을 드리다가 그의 몸속에 불을 질러 그슬음을 남기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인근에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이 개관하여 이 나무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나무는 자연스럽게..

수호수 2023.03.23

장양리 고촌 느티나무 숲

나무 옆집에서 하하호호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윽고 가족이 손에 무언가를 한아름 쥐고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어르신이 뒤따라나오며 나무 아래에 서서 잘 가라며 배웅하는 말을 끝으로 다시 마을엔 적막함이 감돕니다. 봄이 와서 모든 것이 살아났다라는 것을 저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오랜만에 한 마을이 살아 숨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 소리는 사그라들어 고요해졌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새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가 대신합니다. 가장 큰 나무를 필두로 주위에 사람 가족이 아닌 열두 그루의 나무 가족이 한가득 있어 그들이 떠드는 이파리 소리에 귀가 간지럽습니다. 자식들은 다시 도회지로 나갔지만, 어르신께서는 이제 다른 가족들과 함께하실 겁니다. - 나 무 정 보 - 장양리 고촌 느티나무 숲 수종 ..

수호수 2023.02.09